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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 앞으로 나란히시(詩)/정일근 2019. 1. 11. 15:49
운동장 조례시간이면
사마귀 난 내 손등이 슬펐다
어머니는 술 팔고
우리는 아비 없는 자식이었다
하나 뿐인 방에 까지 손님이 들면
동생은 도둑 고양이처럼 웅크려
부뚜막에 누워 잠들고
안데르센 동화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림숙제를 해야 하는데
밤늦게 술주전자 나르며
같은 반 고 가시내 볼까 부끄러워
나는 자꾸만 달아나고 싶었다
앞으로 나란히
앞으로 나란히
내미는 손을 앞질러 달아나고 싶었다
돌아보면 웅크리고 있는
쓸쓸한 유년의 삽화 한 장
그 풍경들 하얗게 지워져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부끄러운 손등 감추지 못하고
앞으로 나란히
앞으로 나란히
(사진 : 네이버 노이만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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