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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어떤 평행선시(詩)/이태수 2018. 12. 28. 21:39
담장 아래 연초록 풀잎들이 돋아난다
저버리지 않은 언약처럼,
못 견디도록 사무치는 그리움 같이,
북풍한설 다 밀어내고 햇살을 끌어당긴다
지난 겨우내 참아온 말, 너를 좋아한다는
그 말, 안으로 굳게 빗장 지른 채
무덤까지 가져가야할 것 같은 그 말 한마디,
남몰래 햇살에 꺼내보다 깊이 끌어안는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는 물,
영영 되돌릴 수 없는 화살 같지만
봄은 또 발자국소리도 없이 먼 길 돌아서 오고,
꽃들은 다투어 피었다 이내 지고 말겠지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새들이
담장 옆 빈 나뭇가지애 앉아 밝게 지저귄다
나무들도 제자리에서 힘껏 달리고 있는 중일까
내 마음 알 리 없는 너는 저만큼 가지만,
그래도 이 평행선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아무도 몰래 쟁이고 또 쟁여온 말,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 그 한마디 말이
설령 안으로만 반짝이는 유리알 같더라도(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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