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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적막, 또는 늦가을 저녁시(詩)/이태수 2018. 10. 13. 09:54
서녘이 붉게 설레다 가라앉는다.
땅거미 짙어지는 산 발치, 잎새 떨구는
나뭇가지 사이로 둥그렇게 달이 떠오른다.
작은 별들은 이마 조아리며
하늘 자락 여기저기 모여 앉는다.
동네 조무래기들처럼 눈빛이 푸른 별들,
내 마음 자락에도 푸르게 돋아난다.
적막이 감싸안은 늦가을 숲은
그 품속으로 낮고 깊게 잦아든다.
둥근 달도, 푸른 별들도
고요하고 쓸쓸한 그 품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서늘한 바람에 옷자락 날리며
나도 따라들어간다. 새 한 마리가 문득
한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옮겨 앉는다.
적막의 가장자리가 잠시 흔들린다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산 발치의 나무들과
하늘의 달과 별들, 새의 날개짓과 바람소리도,
나도, 적막 속에 낮게 낮게 엎드린다.
하늘은 그 윗가장자리. 어두운 땅과 그 위의
모든 사물들은 그 아랫가장자리일 뿐,
적막은 어김없이 제자리에서 깊어지고 있다.(그림 : 심만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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