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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임 - 늦은 사랑시(詩)/시(詩) 2018. 9. 12. 23:07
– 창평에서 한철
창평 장날 면에 나간다,
두부 한 모 막걸리 한 병 사고
약방 지나 미장원 옆 쌀집에 들러
아저씨, 쌀 3kg만 주세요봉지쌀을 팔아 거처로 돌아오는 저녁,
근래 봉지쌀을 팔어가는 사람들이 많네라
쌀집 아저씨 말에 쿵 내려앉는 가슴
첩첩산 골짜기 어디쯤 빈집에 살림 차리고 싶은
내 맘 콕 찔린 것도 같아
짐짓 경기 탓이라는 듯
피식 웃어넘기고 돌아 나오는 길
이 마을 어딘가에 나보다 먼저 살림 차린
늦은 사랑이 있을지도 몰라
부러움이 앞서왔던 것인데
지난 번 장에 나와 붉은 냄비를 사고
가난한 사랑 끓여줄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고
라면 몇 봉지와 인스턴트 반찬 몇 가지와
이 집에 들러 봉지쌀을 팔아갔을지 몰라
날이 풀리면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뙈기밭이라도 얻어 경작할 농작물을 궁리하고
가끔은 면소재지 국밥집에 들러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암뽕순대를 시켜
백아산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온 밤이 있었을 거야
그들의 사랑은 누룩처럼 발효되고
빈가에 고소한 냄새 진동했을 거야
마을의 개들 밤새 짖어댔을 거야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산이 먼저 문 닫아 걸고 길을 내어주지 않는 산골
내 사랑도 그 산기슭 어디쯤에 자물쇠를 채우고
누룩 띄워 막걸리를 담고
붉은 냄비에 밥물이 넘칠 때
냄비 닮은 엉덩이의 여자가 되어도 좋을
꿈꾸는 한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림 : 김의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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