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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화순 - 미도산에 부는 바람
    시(詩)/시(詩) 2018. 9. 13. 22:59

     

    토요일 오후, 구름다리 건너 미도산에 갑니다

    시내를 헤매던 부은 발 촉촉해지고

    먼지 낀 얼굴 푸르고 환해집니다

    아직 여름을 살고 있는 노루오줌과 비비추 잎사귀는

    안색 누렇게 무너지는 굴참나무 속

    시간의 살결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툭툭, 어깨 두드리며 자신의 존재

    온힘으로 알리는 집 떠나온 상수리며 밤송이들

    애써 주워들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썩어서가 아닙니다

    아직 내 안의 열매들 푸른 옷 벗지 못하고

    누렇게 여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름내 나의 시간도 울창한 푸른 잎으로 살았습니다

    초록과 초록이 겹쳐지던 열정의 시간들은

    냉정한 가을바람에 무릎까지 시려옵니다

    누구나 생의 사계절 제대로 겪어봐야 처음의

    환하고 아련한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움의 시간 지나온 산 속 식구들도

    지난여름의 뜨거운 초록사랑 보냈겠지요

    여위어가는 바람이 온몸 씻어주는 계절

    다가올 눈 속 뿌리의 시간으로 살려고

    나무껍질마다 아린 길 수없이 그려 넣고 있습니다.

    (그림 : 박명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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