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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윤수 - 빨래가 마르는 시간시(詩)/시(詩) 2018. 9. 9. 23:44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빨래가 널려 있다
이동 건조대 가득 큰 대자로
위쪽은 나란히 직수굿하고
아래는 넌출진 구비를 드리운다
세탁기 속에서 혼비백산
그 컴컴하고 거친 물살을 통과한 기억이
빨래에게는 없는 것 같다
머릿속까지 표백 되었을지도 모르니
세상에는 매달려 견디는 것들이 많다
나도 어떤 것에 안간힘으로 매달려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던 때가 있었다
외줄을 잡고 젖은 빨래처럼 허공에서 뒤채었다
씨앗이 여무는 시간도 그러했으리라
양 팔 가득히 빨래를 걸치고 서 있는 건조대가
수명 오래된 한 그루 빨래나무 같다
은결든 물기와 구김을 다림질 해주듯
햇볕이 자근자근 빨래의 등뼈를 밟고 다닌다
어느 어진 이의 심성과 순교의 윤회일까
제 본분인 양 빨래는
모짝모짝 부지런히 말라간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배경에 잠풀 향기 은은하다
(그림 : 김종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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