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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만 부리던 빛의 입자가
깨금발로 당도한 장지문에
부신 빗금 하나 긋고 지나가면
시렁에 잠들었던 메주가 기지개 켠다
순전히 이건 누가
간섭할 일도 아닌 것이
고부간 대물림으로 이어온
비밀 같은 것
엄하시던 할머니, 오늘은
마음 비운 항아리에 금줄 하나 두른다
속내 들킨 메주가 드러눕자
정갈한 물에 저미는 흰 꽃소금
어머니 여린 손이 가늘게 떨린다
쪽박 빛 바래도록 밤낮을 손꼽아
서로 살 비비며 녹아내린 메주의 찰진 몸살
텃밭 푸성귀 한 뼘 더 자라고
싱겁던 내 입맛도 차츰 간이 배어간다(그림 : 정경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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