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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 - 낙과(落果)의 이유시(詩)/이수익 2018. 8. 26. 22:40
사과 한 알의 무게 중심이
오래 준비하고 있었던 듯, 그때야 떨어져
내린다.
땅의 거친 표면이 그 순간 순해져서
붉고 푸른 사과 한 알과의 만남을 너무나도 기쁘게 생각하며
이를
받아들인다.
땅은 이미 오래전부터
낙과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사과가 자라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그 빛깔과 향기를
몰래 지켜보면서, 꽃과 벌의 나타남과 사라지는 때를 기억하면서,
해와 달과 별빛, 구름의 운행을 떠올리면서
언젠가는 사과가 제 몫을 다해 지상으로 떨어져 갈 날을 곰곰
가슴에 새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과가
고요히 떨어진다.
온몸 가득히 펼쳐지던 지상의 복된 시간과
눈물 나게도 그리운 정든 분위기와 마지막 이별의 공감이
차마 아쉬운 듯
한 알의 그리움이 떨어진다.
이 땅에,
한 알의 축복이 떨어진다
(그림 : 조경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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