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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로 처음 시집왔을 때는
스물세 살 적,
백합 향기 피어오르는 어느 유월 아침 같은
그런 나이였었지.
가슴엔 분홍빛 레이스로 장식된 꿈의 커튼,
머리 속엔 매일을 가득 채우고 싶은
싱그러운 야망,
그런 설레임에 하루 종일 물풀처럼 흔들리곤 했었지.
아, 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당신만의 비밀을 몰래 안으려고........
이제 내 곁에서 잠든 아내여,
그동안 세월은 얼마나 흘러 갔나.
눈가에 손등에 밀려온 시간의 물결
그 쓸쓸한 주름살같이 우리의 중년은 밀려서
웃음마저 한결 더 깊고 조용해진 아내여,
고단한 잠결에 부풀어 올랐다 꺼지는 그 가슴 위로
가만히 손을 얹어
한 생애를 내게 맡긴 당신의 젊은 날
순결했던 사랑을 본다, 희망을 본다, 그리고 우리
함께 저물어가야 할 내일을 본다.(그림 : 이형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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