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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만 - 늙은 마라토너의 기록시(詩)/박일만 2018. 6. 21. 22:51
출발도 도착도 아닌
지금은 철저히 혼자다
늘어가는 나잇살로 가능성을 점쳐 보지만
신기록은 요원하다
재기를 위해 목숨을 건 몸만들기
모자 눌러쓰고, 운동화 끈 동여매고
새벽에 출발, 이슥하여 돌아온다
온몸에 어둠을 칠하고 귀가하는 나이
막판까지 뛰어야 한다는 다짐만 늘어간다
한때의 영광은 묻혀진지 오래
팬들의 갈채도 이제는 기억조차 하얗다
어떻게든 맞바람을 깨고 기록갱신 해야 하는
몸은 점점 늘어지고
아득한 기록이 앞서가며 나를 따돌린다
달려본 사람만이 아는 저승같은 골인지점
악천후를 뚫고, 달리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좌우명에 땀 절은 짧은 팬츠로 왔다
단 몇 초의 기록 단축도 억겁과의 싸움이다
반환점을 돌아도 한참을 지나 온
저무는 길은 또 가파르고
아침부터 뛰어 여기에 당도했으나
변변한 기록하나 건진 게 없는 나이
생을 바쳐 달려온 두 다리만 기진할 뿐,
(그림 : 한희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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