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상호 - 두 잔 집시(詩)/길상호 2018. 6. 10. 18:11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
아니 전생에 두 번쯤은 만난 적 있는 사이
창유리 먼지 낀 불빛에 홀려
지나간 이들처럼 탁자에 마주앉았네
찌개가 줄지도 않고 식어가는 동안
혓바닥 위에 들깨소금만 몇 알씩 털어 넣으며
옆 자리 사람들이 하나둘
희뿌연 김 속으로 사라지는 것도 알지 못했네
한 잔 또 한 잔 전생이 가까워질수록
소주병처럼 푸른 밤이 쌓여가고
주인 할머니는 윤회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몇 번이고 안주를 데워다 주었네
우리는 만난 적이 없는 사이,
아니 이미 전생에 두 번은 헤어진 사이
탁자 속 나뭇결을 한참 헤매다가
서로의 목소리를 놓치고 빙빙 돌다가
끊어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두 잔의 술이 필요했네
(그림 : 이우성 화백)
'시(詩) > 길상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상호 - 저물녘 (0) 2020.04.22 길상호 - 바람이 들렀던 집 (0) 2018.05.26 길상호 - 사북 (0) 2017.12.30 길상호 - 꽃 이름을 물었네 (0) 2017.09.04 길상호 - 버스를 놓치다 (0) 2017.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