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은 이름을 읊다 일어난 아침
입술에도 차갑게 눈이 쌓여 있었다
사북사북, 꿈속 발자국들을 주워 가방에 담고
나는 사북 행 기차를 탔다
구름과 함께 딱 한 번 들른 적 있는 곳,
역사 앞 공중전화박스에 서서
혼선 중인 당신 목소리를 내려놓고
멎지 않는 눈발만 멍하니 바라보던 곳,
지문 속에 말아 넣어둔 낡은 지도를 펼쳐들고
탄가루 뒤집어쓴 약방 간판이나
고드름 매달린 다방의 연통을 떠올리면
기억들은 그 맛이 텁텁했다
탄광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마다
기차는 덜컹덜컹 잔기침을 해대고
나는 사북사북,을 가루약같이 털어 넣으며
창유리에 맺힌 검은 얼굴을 닦았다
언제나 과거형의 철로 끝에 놓여있던 곳,
그러나 폐쇄된 몇 개의 역 이름을 거치는 동안
결코 사북에 닿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발자국들도 어느 틈에 가방을 열고 나와
눈구름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그림 : 김지환 화백)
'시(詩) > 길상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상호 - 두 잔 집 (0) 2018.06.10 길상호 - 바람이 들렀던 집 (0) 2018.05.26 길상호 - 꽃 이름을 물었네 (0) 2017.09.04 길상호 - 버스를 놓치다 (0) 2017.05.12 길상호 - 소원들 (0) 2017.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