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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바람이 들렀던 집시(詩)/길상호 2018. 5. 26. 18:09
삽짝 모탱이를 돌아 초여름 바람이
항아리 뚜껑에 쌓여 있던 탑새기를 훅,
불고 지나갈 때 나싱개 나싱개
늦게 피운 꽃들만 마음이 흔들리고
남새밭 싹뚝 잘린 정구지들만 또 고개를 드네
감낭구에 매어둔 누렁이도
양제기에 찰름찰름 출렁이던 햇볕도
저 담벼락 밑에 찌그러져 있는 집,
누구 없슈? 누구 없슈? 소리쳐도
벼름박에 걸린 소쿠데미 올이 풀려
아무 대답도 남아 있지 않은 집,
도무지 기둘려도 대간한 얼굴로 돌아와
저녁을 뽀얗게 씻치는 사람은 없고
삽짝 모탱이 : 대문가 모퉁이
나싱개 : 냉이
남새밭 : 텃밭(채소밭)
정구지 : 부추
감낭구 : 감나무
벼름박 : 벽
소쿠데미 : 소쿠리
기둘려도 : 기다려도
대간한 : 힘든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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