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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 몽환의 집시(詩)/김왕노 2018. 5. 22. 17:52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 집에 어둠이 왔다.자주 생살구가 지붕에 떨어져서 살아있나 죽었나. 안부를 묻고,
지병인 그리움이 또 도진 참죽나무 숲은 뒤란에서 아프다.
꼭꼭 여며도 바람 드는 세월, 삼꽃 피는 날,
백년 우물물을 길어 벌컥벌컥 마시면
오늘의 갈증은 말끔하다.
탁발을 나섰던 동자들이
저무는 골목을 따라서 돌아오고,
산 제비는 깎아지른 절벽의 둥지로 돌아갔다.
생각하면 눈시울 젖는 살림살이,
별빛의 온기마저 가만히 거두어
구들장 식은 안방으로 들이고 싶은 마음,
켜켜이 포개어 잠든 어둠마저 어린 자식처럼 정겨운데,
단수와 단전이 된 집이지만 늦은 저녁상을 물리면
하나 남은 촛불로 환해진 집, 밤이 깊어지자 캄캄한 집,
한 땀 한 땀 사랑을 박음질하는 소리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다.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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