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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시(詩)/백석 2018. 5. 8. 18:20

     

    황토마루 수무나무에 얼럭쿵 덜럭쿵 색동헝겊 뜯개조박 뵈짜배기 걸리고

    오쟁이 끼애리 달리고 소삼은 엄신같은 딥세기도 열린

    국수당고개를 몇 번이고 튀튀 춤을 뱉고 넘어가면

    골안에 아늑히 묵은 영동이 무겁기도 할 집이 한 채 안기었는데

     

    집에는 언제나 센개같은 게사니가 벅작궁 고아내고

    말 같은 개들이 떠들썩 짖어대고

    그리고 소거름 내음새 구수한 속에 엇송아지 히물쩍 너들씨는데

     

    집에는 아배에 삼춘에 오마니에 오마니가 있어서 젖먹이를

    마을 청능 그늘밑에 삿갓을 씌워 한종일내 뉘어두고 김을 매러 다녔고

    아이들이 큰 마누래에 작은 마누래에 제 구실을 할 때면

    종아지물본도 모르고 행길에 아이 송장이 거적뙈기에 말려나가면 속으로 얼마나 부러워하였고

    그리고 개때에는 부뚜막에 바가지를 아이덜 수대로 주룬히 늘어놓고

    밥 한덩이 질게 한술 들여틀여서는 먹였다는 소리를 언제나 두고두고 하는데

     

    일가들이 모두 범같이 무서워하는 이 노큰마니는

    구덕살이 같이 욱실욱실하는 손자 증손자를 방구석에 들매나무 회초리를 단으로 쩌다 두고 따리고

    싸리갱이에 갓신창을 매여놓고 따리는데

     

    내가엄매 등에 업혀가서 상사말같이 항약에 야기를쓰면

    한창 피는 함박꽃을 밑가지채 꺽어주고 종대에 달린 제물배도 가지채 쩌주고

    그리고 그애끼는 게사니알도 두 손에 쥐어주곤 하는데

     

    우리 엄매가 나를 가지는 때 이 노큰마니는

    어느밤 크나큰 범이 한 마리가 우리 선산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것을

    우리 엄매가 서울서 시집을 온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노큰마니의 당조카의 맏손자로 난 것을

    대견하니 알뜰하니 기꺼이 여기는 것이었다

    넘언집 : 산 너머, 고개 너머의 집을 의미

    노큰마니 : 노(老)할머니. 여기에서는 백석시인의 증조할머니를 뜻하는 것 같음

    수무나무 :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또는 산기슭 양지 및 개울가에

    뜯개조박 : 뜯어진 헝겊조각

    뵈짜배기 : 베 쪼가리. 천 조각

    오쟁이 : 짚으로 작게 엮어 만든 섬

    끼애리 : 짚으로 길게 묶어 동인 것. 꾸러미

    소삼은 엄신 : 성글게 짠 엄짚신(상제가 신는 짚신)

    딥세기 : 짚신

    영동 : 기둥과 마룻대를 아울러 이르는 말

    게사니 : 거위

    벅작궁 : 법석대는 모양

    고아내다 : 떠들어대다 

    엇송아지 :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송아지

    너들씨다 : 한가하게 천천히 왔다갔다 하며 맴돌다

    청눙 : 청랭(淸冷) 시원한 곳. 마을 입구의 그늘진 곳, 또는 야산 끄트머리 그늘진 곳

    큰마누래 : 큰마마 손님마마 천연두

    작은마누래 : 작은마마. 수두 또는 홍역

    종아지물본 : 세상물정. 종아지를 홍역을 불러 일으키는 귀신으로 해석해 '홍역으로 죽어나가는 까닭도 모르고'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주룬히 : 주렁주렁. 어떤 물건이 줄지어 즐비하게

    질게 : 반찬

    구덕살이 : 구더기

    욱실욱실 : 득시글 득시글. 많은 사람이 떼를 지어 들끓는 모습

    싸리갱이 : 싸리나무의 마른 줄기

    갓 신창 : 소가죽으로 만든 신의 밑창

    상사말 : 야생마

    항약 : 악을쓰며 대드는 것

    야기 : 억지를 쓰는 짓

    당조카 : 장조카. 맏조카

    (그림 : 림용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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