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순 - 가자미식해시(詩)/이동순 2018. 4. 18. 22:21
잘게
썰어놓은 가자미
가지런하게 채 썬 무와 엿기름
밥 한 사발과 양파즙
곱게 간 고춧가루
다진 마늘과 엿기름이 앞에 놓여 있다
밥은 양파즙 껴안고
가자미는 엿기름 보듬어 안고
그 위에 고춧가루
몇 움큼 쥐어 슬슬 뿌려준 다음
전체를 뒤집으며
다정스레 버무려 간다
영감님께서
작은 단지 씻어 와 옆에 갖다 두니
할머니는 다 버무린 것을
그 안에 차곡차곡 쟁여 넣는데
이때 그윽한 손맛은
반드시 따라 들어가는 것
오늘부터 식해는
차고 응달진 곳에서
열흘간의 발효와 숙성 참고 견디며
옛 조상님 지혜와
정성이 듬뿍 밴 모습으로
드디어 진정한 식해가 되어가는 것이다
차갑고 일정한 온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끈기
외진 곳의 고독을 이겨내고
모든 재료는
하나로 부둥켜안은 채
진정한 가자미식해로 거듭나는 것이다
'시(詩) > 이동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동순 - 산수유 (0) 2018.04.19 이동순 - 옹기 김수환 (0) 2018.04.18 이동순 - 비빔밥 (0) 2018.04.17 이동순 - 오디 똥 (0) 2017.11.23 이동순 - 목화다방 (0) 2017.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