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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토란잎 그늘 맛을 알았다토란대 사이를 누비고 다니다가 쬐는 햇볕 맛을 알았다
토란 밭고랑 옆에 돋기 시작한 시금치 맛을 알았다
하필 동리서 싸낙배기로 소문난 너디할매네 아래텃밭이다
뉘집 닭이 우리 밭을 다 조녀 놔 부렀디야 흐흠,
시금치 씨앗을 두 번이나 뿌렸는데 하나도 남은 게 없다고 헛기침을 했다
닭을 닭장에 가둬 키우기는 싫고
그렇다고 닭이 농사를 다 조져 놓았다는 말을 들음서까지
닭을 마냥 놓아 키울 수도 없고 해서 아침저녁으로 궁리하던 차에
닭은 잘 크냐고 전화안부를 물어오는 부안살구나무 집 어머니께 암탉과 수탉을 보낸다
적적치 않게 말짓도 하면서 어머니 말동무나 하라고 닭을 보낸다
일어나라고 방문 앞에서 빡빡거리던 닭,
모이 주고 물 주고 밥벌이하러 나서면 내 꽁무니를 우르르 따라나서던 닭,
그만 따라오라고 그만 들어가라고 소리치던 아침도 같이 보낸다
(그림 : 박일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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