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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 슬픈 저녁시(詩)/마경덕 2018. 2. 9. 08:59
저녁에게는 누가 저녁밥을 지어주나
찬밥 한 술 뜨고 담배 한 대 태우고
한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와글와글 몰려드는 저녁들
야근을 마친 새벽
어디에 자리를 펴고 누울까?
저녁에게 눈부신 아침이 저녁이라면,
한 방울의 빛과 소음도 뼛속에 스미지 않도록
두꺼운 커튼을 치고
잠을 눕히고 귀를 틀어막는,
시끄러운 대낮을 저녁이라 부르는 슬픈 족속들
저 불안한 잠에게 누가 이불을 덮어주나
번번이 코피를 쏟는 저녁에게
굶지 말라고, 밤일에 몸이 축난다고, 누가
차디찬 저녁의 등을 만져주나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아무 데나 등 기대면 깊은 어둠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피가 마르는 저녁들
오늘밤 졸지말자고
빈속에 커피를 석 잔이나 마시고 박카스도 마시고
검은 작업복을 걸치고, 우르르 일하러 나오는 저녁들…
(그림 : 황재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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