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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경덕 - 집단사육장
    시(詩)/마경덕 2017. 7. 13. 21:51

     

     

    아침은 저녁에게 사육되었다

    조련사가 채찍을 휘둘러 새벽을 몰고 오듯, 우리는 아침에 길들여졌다

    어지러운 침대에 졸음을 묻어두고 비누거품이 묻은 일곱 시를 드라이어로 말린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흩어진 매무새를 정리한다

     

    단추가 떨어진 지난밤처럼 우리는 물렁한 체질, 칼라믹스처럼 손자국이 나는 체질

    한 번의 손짓에도 쉬 휘어진다

     

    전철 손잡이에 매달려가는 아침

    환승역에서 발을 밟히고 사육장으로 출근하면

    두 손에 당근과 채찍을 든 노련한 조련사가 기다리고 있다

    어서 묘기를 부려봐! 뒷짐을 진 여유 앞에

    다급하게 인터넷을 뒤지는 사람들

    명령은 코앞이고 정답은 저편에 있다

     

    퇴근 후 몰려간 어학원

    졸음이 덮치고 혀가 꼬인다 멀고 먼 나라가 입안에서 빙빙 돈다

    반드시 체질을 바꾸고 말거야

    조련사를 꿈꾸지만 오답에 익숙한 우리들, 뒷골목에서 술잔이나 주고받으며 늙어간다

     

    저녁이 내일을 조련하는 시간, 오늘도 야근이다

    폭언과 서류뭉치를 면상에 던져도 사표를 쓰지 않는 사육하기 좋은 체질들,

    의자와 책상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림 : 남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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