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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 벚나무 세입자시(詩)/마경덕 2017. 4. 26. 22:05
이른 봄
벚나무는 빈방이 많다
겨우내 불 꺼진 썰렁한 방
남아도는 방은 골칫거리다
흥청망청 삼월을 탕진한 지난봄은 야반도주하고
벚나무는 버찌를 탈탈 털어냈다
그 자리가 또 가려워,
- 빈방 세놓음
강변에 전단지를 붙이는 중인데,
만삭의 봄이 달려와 해거름까지 벚나무를 조른다
바람이 훈수를 들고
월세계약서에 얼른 지장을 찍는 봄
가지마다 꽃무늬벽지를 바르고
빽빽하게 방을 차지할 봄의 아이들
연신 얼굴을 맞대고 희희낙락 밤낮없이 떠들어댈 등쌀에
벚나무 머리가 지끈거린다
지붕이 없는 집
비가 오면 하늘이 샌다
계약서가 비에 찢기면 임대는 끝나지만
봄은 또 가지마다 오달지게 꽃을 낳는다
(그림 : 신종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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