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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호 - 바지락, 바지락
    시(詩)/시(詩) 2017. 12. 30. 11:08


     

    바다가 바지락바지락 풀어놓은 이야기들

    무릎 꿇고 열심히 캐고 있는 아주머니,

    그 이야기들 도시로 전해주며 받을 일당 이만 원처럼

    머리 위에 갈매기 두 마리 떴습니다

    아주머니는 갯펄을 끌고 가는 거북이를 닮았습니다

    쪼그려 걷고 난 후 남은 민무늬 발자국마다

    작은 바다를 남기셨지만

    그 발자국이 못생긴 망둥어나 겁 많은 게들에게는

    고래등 같은 집이 된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발자국 속에 들어앉은 하늘도 오늘 참 편안한 모습입니다

    꼴뚜기 같은 자식새끼 오징어가 아니면 어떻고

    문어가 못되면 어떻습니까

    개펄을 남편처럼 여기고 손주 새끼 같은 발자국들

    주렁주렁 바닷물에 풀어놓으면 그뿐

    아주머니 시집살이 사십 년 한도

    밀물 서너 번 지나가면

    개펄 위에서 반쯤 지워질 것이 뻔합니다

    남편 생각도 요즘 나는 바지락 개수처럼 휴년일 테지만

    수평선에 섬처럼 걸터앉았다가 황혼녘 개펄 위에

    바지락을 하나하나 박아놓고 가는 해가

    바로 아저씨입니다

    오늘 저녁 아내가 바지락을 삶고 있습니다

    바지락이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내가 나를 보며 개펄처럼 포근하게 웃습니다

    웃음 속에 바지락처럼 파묻혀 아기가 잠들었습니다

    꼴뚜기처럼 못난 남편이지만

    저도 한 가정을 끌고 가는 거북이라는 것을

    가끔 깨닫습니다 아주머니가 전해준

    바지락 덕분에

    (그림 : 박석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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