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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형 - 물외라는 말
    시(詩)/시(詩) 2017. 12. 26. 21:49

     

    거긴 촛대처럼 나란히 선 모개낭게에 듬성듬성 게구름이 재금을 나던 곳이었다.

    애장터를 지날 때면 누구랄 것도 없이 무덤에 작은 돌 하나씩을 얹어 주고는

    퉤에 퉤 시늉 침을 뱉으며 니 말 안한다 니 말 안한다 전수받은 주문을 외었다.

    문지방 밟지 말라던 금기와 빳빳하게 풀 먹인 홑청냄새 섞일 때도 그 말은 노랗고 작은 꽃잎 끝에 매달려 꼭 왔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펄럭 사라진 것들로 요약된 세계일 뿐이.

    서답이나 당산목, 새미 같은 말들과 함께 끝물 지나도 한참 지난 말이 된 것이다.

    구불텅하고 구석진 자리에 놓인 물외라는 말.

    한 세대가 사라지려 할 때 말은 소멸 증상을 앓는지도 모른다.

    얼굴에 분(粉)기라곤 누릴 새 없이 산자락 깊은 계절을 바꾸며 직진으로 늙기만 한 여자들이 물외처럼 있는 곳을 안.

    대물린 전답 대신 고층 아파트에 에워싸여 짜부라지고 귀가 나간 생의 전경을 처음으로 고치는 여자들.

    ) -->통뼈감자탕, 24시편의점 같은 생경한 말의 전경을 습해야 하는 여자들.

    니 말 내 말 더 할 것도 안 할 것도 없어진 구순 들머리, 여자 안 가진 여자들이 내걸린 간판을 더듬더듬 따라 읽으며

    물외​(物外)를 향해 굽어가고 있는 그 곳을.

    모개낭게 : '모과나무'의 경상도 말

    서답 : '빨래'의 경상도말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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