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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회화나무 그늘시(詩)/이태수 2017. 11. 17. 18:09
길을 달리다가, 어디로 가려하기보다
그저 길을 따라 자동차로 달리다가,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섰다.
그 순간, 내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그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 백 년 정도는 그랬을까.
마을 초입의 회화나무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오가는 길들을 끌어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 따라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
나처럼 뜬금없이 머뭇거리기도 했으련만,
두텁기 그지없는 회화나무 그늘.
그 그늘에 깃들어 바라보면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며 펄럭이는 바람의 옷자락.
갈 곳 잃은 마음은 그 위에 실릴 뿐, 눈앞이 자꾸만 흐리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는지,
이름 모를 새들은 뭐라고 채근하듯 지저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여태 먼 길을 떠돌았으나
내가 걷거나 달려온 길들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군다.
다시 가야 할 길도 저 회화나무가 품고 있는지, 이내 놓아줄 건지.
하늘을 끌어당기며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그 그늘 아래 내 몸도 마음도 붙잡혀 있다
(그림 : 이운갑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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