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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아, 아직도 나는시(詩)/이태수 2017. 2. 22. 16:43
붙들고 싶은 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늦은 오후, 아득해지는 길들.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댄다. 그 발치에서
나는 내 그림자 속에 갇혀 저만큼 떠밀리고 있다.
하고 싶지만 입언저리에 말라붙은 말들이
낮달처럼 희미해진다. 구름이 가린 하늘이 땅 위로
미끄러지고, 몇 줄기 햇빛이 내 그림자를 끌어당긴다.
아니, 남김없이 빨아들인다.
구름이 또 하늘 자락 헤집으며 흘러간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내가 닿을 수 없는 높이와
깊이의 꿈 속을 기웃거린다. 간밤 잠 속에서 잠깐
만났다가 잃어버린 꿈, 그림자에 갇혀 버린 저 길들.
나무숲 속으로 새들이 날아든다. 이윽고 해는
서산마루에 걸렸다 내려서고, 길 잃고 헤매던 내가
그림자를 벗어난다. 안 보이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아, 아직도 나는 내 그림자의 그림자.
(그림 : 박영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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