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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겸구(箝口)시(詩)/이태수 2017. 7. 3. 21:39
며칠째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말들을 애써 누르고 또 누르며
침묵 저 너머의 말들을 기다린다
말은 말들을 부르고
사방연속무늬처럼 퍼져나가려 하겠지만
그 틈바구니에 낮게, 아주 낮게 엎드린다
언제 날아왔는지, 작은 새 몇 마리가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에 앉아 조잘거린다
내가 하지 않은 말을 마치 대신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이마가 따갑도록 쏟아져 내린다
새들은 쉴 새 없이 나뭇잎에 말을 끼얹고
아이들이 그 그늘에 모여 앉아 종알댄다
한낮의 침묵은 여전히 견고한 담장,
새들의 조잘거림도, 아이들의 종알댐도
그 담장에 부딪쳐 튕겨 나가는 탁구공 같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말들을 잠재운다
며칠째 견디기 힘든 말들에 시달리면서도
아주낮게, 더더욱 낮게 마음 조아린다
겸구(箝口) :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음.
(그림 : 김미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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