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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 난생처음 봄시(詩)/김상미 2017. 5. 31. 11:22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아, 그 앞에 네가 서 있었으면 좋겠어
새벽 편의점에서 사온 일회용 커피를 들고
밤새 외로웠던 현관문을 밀고 들어와
내겐 너무 커다래 질질 끌리는 내 얌전한 슬리퍼에
두툼한 네 두 발을 끼우고
이리저리 쿵쿵거리며
마음대로 냉장고 문도 열어보고
뻔뻔하게 속옷 서랍장도 열어보고
벽에 걸린 엄마 사진에 묵례 윙크도 살짝 해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다 어젯밤 벗어놓은 내 스웨터에 팔도 넣어보고
소파 위에 펼쳐진 내 시집을
콧노래 흥얼거리듯 읽으며
온 집안을 쿵쿵 휘젓고 다녔으면 좋겠어
우리집이 들썩들썩 살아 움직였으면 좋겠어
우리집이 새털처럼 명랑해져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으면 좋겠어
살아 있는 예쁜 아지랑이들이 온 집안으로 쳐들어와
우리집으로 놀러 와요, 우리집으로 놀러 와요
기막히게 아롱, 아롱대었으면 좋겠어
평생 잊지 못할 난생처음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어(그림 : 송진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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