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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미 - 폭풍 속으로
    시(詩)/김상미 2017. 10. 23. 23:01

    ― 1970년대풍으로

    이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넌덜머리가 난다

    우리는 우리끼리 만났다

    우리끼리 떼 지어 다녔다

    핑크 플로이드를 듣고 재니스 조플린을 듣고

    지미 헨드릭스, 롤링 스톤스를 따라 불렀다

    까마귀떼처럼 백로가 노는 곳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가 슬픈 뮤지션들

    온몸이 서러움으로 만들어진 사람들

    어느 곳을 건드려도 툭, 하고 푸른 눈물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노래 가사와 똑 같은 꺾인 길, 굽어진 길, 막다른 길을 돌아다녔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무릎에 붉은 상처가 생겼다

    오오, 붉은 상처는 훈장 같아!

    우리는 서로의 무릎에 난 상처를 따끗한 혀로 핥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소박하고 소박한 청춘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소박함이야말로 우아함의 선물이라는 진실 앞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만큼 나누어줘야 할지 몰라

    광란의 속도로 달리는 도심의 한가운데에서

    느릿느릿 에릭 사티를 듣고

    조용필의 <킬로만자로의 표범>을 소리쳐 불렀다

    새파랗게 젊은 정의는 한낱 꿈!

    그 누구도 우리에게 다가와 구애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아무리 목 갈기를 휘날려도

    그중 가장 으뜸이 돈이라고, 돈다발이라고

    우리는 다시 굽은 길, 꺾인 길,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그러나 침묵하는 자가 있으면 노래하는 자도 있는 법

    우리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더 멀리, 더 먼 곳으로 나아갔다

    자유의 속옷을 열어젖힌들 무엇하랴?

    이마에 찍힌 청춘의 이름표를 도려낸들 무엇하랴?

    우리는 누구와도 우리의 삶을 흥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끼리 떼 지어 놀았다

    비 오고 바람 불고 폭풍우 치는 이런 시대,

    너무 멀리 나간다는 건 미친짓이지만

    우리는 노란 해바라기, 불타는 태양

    달리는 기차처럼 변화를 향해 나아갔다

    심장을 찌르는 노래,

    그 노래를 움직일 거대한 폭풍 속으로!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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