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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미 - 제비꽃
    시(詩)/김상미 2016. 6. 20. 20:27

     

     

     

    너는 女子, 이미 익사한 땅속에서도 깨어나 죽음 앞에 사다리를 던져 한 발 한 발 기어오르는 女子,

    허황된 남자의 부푼 가슴에 완곡한 경멸의 손톱자국 지그재그로 남기고 가장 긴 밤을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女子,

    날아다니면서 조금씩 망가지고 잊히는 이름들 눈물에 씻어내어 꽃가루 묻은 나비 입술에 깊게 입맞춤 하는 女子,

    세월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찢겨진 미니스커트를 아직도 좋아하고

    라퐁텐 우화집에서 우글거리는 검은 쥐 흰 쥐들을 세상 속으로 모두 풀어내 주는 女子,

    어제 쓴 거짓말투성이 시집을 내 몸 같이 사랑하고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보는 女子,

    소박한 채소가게 앞에서는 두 발을 멈추고 상큼한 방울토마토 같은 웃음은 두말 않고 주워 먹는 女子,

    햇볕 창창한 날이면 우산을 접고 그동안 일용했던 고독을 모두 모아 하나님 주식 펀드에 몽땅 투자하는 女子,

    호랑이 새끼든 뱀 새끼든 여우 새끼든 사랑으로 모두 거두어 깊은 땅속에서 살아나오는 법을 전수해 주는 女子,

    어떻게 해야 끝이고 시작인지를 너무 잘 알아 언제나 일기 끝에 최후의 웃음을 찍어놓는 女子,

    황홀한 봄날, 갓 핀 꽃들을 모두 빼앗기고도 치마 속에 남은 아주 작은 봄볕으로도 새 봄을 만들어내는 女子,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 찬 트렁크를 들고 고추를 널어 말리는 계절처럼 붉게 물든 저녁 속으로 사라지는 女子,

    더 멀리, 아주 멀리, 더 먼 곳으로 매일매일 떠나는 女子,

    떠나서는 다시 환한 봄날처럼 돌아오는 女子,

    우리 집 꽃밭에서 가장 작고 가장 예쁜 女子

    (그림 : 이숙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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