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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밤 나는 담배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네
시 변두리처럼 한적한 밤 친구조차 서로를 비껴가는 밤
혼자서 쓸쓸히 나이테 감으며 휘파람 베어무는 밤
나는 한라산 한 갑을 샀네 이 나라의 하릴없는 음력과
양력 사이에서 한라산, 그 공허한 장초에 불을 붙였네
심연의 봄밤은 연기보다 짙어 눈 앞에 아련한 별똥별들
내 미래의 문 앞으로 자꾸만 떨어져 왔네
어느날 밤 배운 담배맛, 내 주제는 내가 다스려야 한다는
촌장 같은 담배맛, 그 백년지객 내 미늘창 안으로 끌어들이며
그때 난 알았네 이 지독한 정령의 독초 속에서 들끓는
내 비애를. 아무리 봄소식 그득하여도 꽃피울 줄 몰라
밤새도록 꽃나무 그림자 아래 그냥 누워만 있을 내 봄밤을.(그림 : 박종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