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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일몰의 시간 사이로 빠르게
달아난다 저것들도 퇴근을 하나?
스포츠신문을 말아 쥐고
하루종일 장래 희망이 퇴근이었던 나는
풀려난 강아지처럼 성실하게
아랫도리를 흔든다
과묵하지 못한 굴뚝처럼
노을 끝에 비스듬하게 내 하루 동안의 욕설이
내어 걸린다 아아,
쓰벌!
쓰레기만도 못한생존을 벌기 위해 오늘 하루는 또 얼마나 불운했던가
공복에 나는 출근을 하고 날마다 정확히 오 분 씩
늦고
물은, 회사에 가서 먹는다 하루 종일 물먹고
더러는 거래처에서 내미는 구두 티켓까지 받아먹는데도
망가진 대장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쓰벌.
쓰벌 그러나, 노을도 새들도 만성 과민성 대장증후군도
또는 월급을 일주일 남긴 나도
어둡기 전에 퇴근하기는 마찬가지
저 저녁 숲에 깃든 안식을 위해
하루 종일 살생을 일삼는 새 떼처럼
나 또한 살생으로 확인한 언어들로 부리를 씻고
퇴근과 출근 사이의 하늘이 마련하는 은둔 속으로
불현듯 지워져가는 것이 아니랴
나뭇조각이나 담뱃재 그 밖에
삼킬 수 없는 것들을 삼킨 후 총총히 사라지는
고궁의 비둘기 새끼들 처럼
어? 이런 게 아닌데,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마다 삼킬 수 없는 것들로만 배알을 채우면서
또르르, 또르르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랴
어디로든 부리나케 퇴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랴
(그림 : 이형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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