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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근 - 어떤 흐린 가을비
    시(詩)/류근 2017. 3. 8. 19:02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   

    흐린 비 온다   

    자주 먼 별을 찾아 떠돌던   

    내 노래 세상에 없다   

    한때 잘못 든 길이 있었을 뿐   

     

    붉은 간판 아래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같은 추억이 지나간다

    이마를 가린 나무들    

    몸매를 다 드러내며 젖고   

    늙은 여인은 술병을 내려놓는다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슬픔의 자세를 보여주는   

    나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신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    

     

    가을이 너무 긴 나라   

    여기 꽃 피는 일조차 고단하고   

    저물고 눕고 싶을 땐 꼭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잎사귀를 허물면서 나는   

    오래전에 죽은 별자리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흐린 비 온다   

    젖은 불빛들이 길을 나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 노래 술집 쪽으로 가고   

    추억 쪽에서만 비로소 따뜻해지는   

    내 슬픈 잎사귀 또 비에 젖는다

    (그림 : 이형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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