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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내린 배차밭에서 한 보금치 배차를 솎아다가
노강지 휘휘 가셔내고 뒤란 장독대에서 퍼 온 막장을 풀고
손가락만 한 멸치를 똥도 안 발리고 한 웅큼 집어넣고 불을 밀어 넣는다
솥뚜껑이 바람 소리 내며 운다
다듬어 씻은 배차를 넣고 쪽파도 넣고
산에서 따 온 청버섯도 넣고 다시 불을 밀어 넣는다
라디오에선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일년은 삼백육십오일 가지 많은 나무에
노래가 흘렀다
말없이 국에 밥을 말아 마시듯 퍼 먹었다
둬 마리씩 담아준 멸치를 나는 갈비를 뜯듯 발라 먹었다
다 먹고 보니 엄마 머리에 검부재기가 붙었다.
배만 부르면 하루가 즐거웠던 가을 하늘은
배찻잎처럼 푸르기만 하다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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