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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림 - 칼국수 먹는 늦은 저녁시(詩)/허림 2018. 7. 23. 19:32
늦은 저녁
늙은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칼국수를 먹었다
늦은 밤이었는데도 먹고 싶다하니
예전의 그 솜씨로 반죽을 했다
콩가루도 듬뿍 넣어
도마에 쳐대고 드디어 홍두께로 밀어 썰어 끓이셨다
그 옛날이 다시 돌아온 듯
척척 신 꼬달무 김치를 얹어 먹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 연신 훔쳐낸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내가 돌아온 발자국이 눈 속에 묻힌다
참을 수 없이 죽을 것만 같던 날들도 다 지나가고
더러는 슬퍼지기도 하고 그리워지기도 하리
늙은 어머니는 한 국자 더 퍼 담으시며
속 풀리게 훌훌 불며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사막을 걷는 아라비아인처럼
머리 수그리고 또 한 그릇을 비웠다
얼굴은 또 땀으로 눈물이며 콧물이며
할 것 없이 범벅이 되었다
동막골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은 눈에 빠지고
며칠 푹 쉬라는 늙은 어머니 말씀만
이명처럼 웅웅거렸다
(그림 : 한순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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