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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재 - 오래된 기도
    시(詩)/이문재 2017. 2. 26. 20:40

                                                                                                                                              (낭송 : 이문재)

    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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