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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삼월에 내리는 눈시(詩)/이문재 2017. 2. 11. 07:30
봄눈은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지금 봄의 문전에 흩날리는 눈발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질 줄 알았던 것이다.
전속력으로 내리 꽂히고 싶었던 것이다.
봄눈은 이런 식으로
꽃눈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땅의 지붕이란 지붕을 모두 난타하며
오래된 숲의 정수리들을 힘껏 두드리며
봄을 기다려온 모든 추위와 허기와
기다림과 두려움과 설렘 속으로
흔쾌하게 진입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꽃눈을 흥건히 적시고 싶었던 것이다.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난분분하는 봄눈은
난데없이 피어난 눈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선뜻 착지하지 못하는 봄눈은
아니 비의 꽃은 억울해 너무 억울해서
쌩한 꽃샘바람에 편승하는 것이다.
비의 꽃은 지금 꽃을 제 안으로 삼키고
우박처럼 단단해지려는 것이다.(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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