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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 가을 기차시(詩)/문인수 2016. 11. 8. 09:46
들국 앉은 모습이 설핏 종지부 같다.
들국 가느다란 모가지 너머 저
빈 들 먼 끝머리
은빛 기차 한 가닥 천천히 가고 있다.
생각하면 엊그제
개나리 목련 피었다 서둘러 지고
라일락 진달래 아카시아 패랭이 분꽃 달리아 명아주꽃 장미
나팔꽃이 또 줄지어 겨우 겨우 따라왔다.
짧고 아름다웠던 보폭이여
어릴 적엔 그렇게 징검다리 건넜다.
아이들 여럿이 뒤뚱뒤뚱 건넜다.
아이들의 어린 동생들도 다 빠지지 않고 건너면
오, 꽃 자욱한 메밀밭
희고 자잘한 기쁨이 가슴에 들에 많았다.
그렇게 봄 가고 여름 간 것일까.
생각하면 엊그제
더 많이 어둡고 소란스러웠던 날들은
발목을 풀고 떠난 물소리 같은 것.
어느 날은 문득 뒤가 비어 있고
죄 없고 눈물 없는 것들만이 뼈처럼 이어져
이 큰 둘레의 가을을 건너가고 있다.
들국 앉은 모습이 설핏 종지부 같다.
종지부(終止符) : 마침표
(그림 : 이석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