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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늙어 그땐 이미 어부가 아니었다. 고기잡이 대신 고향집 뒤꼍에
한 그루 밀감나무를 가꿨다.
주렁주렁 달린 밀감 가을에도 따지 않고 아버지, 나무 째 거적을 둘러 두루 감싸두었다.
남쪽 바닷가, 겨울이면 나는 또 차를 돌려 친정엘 갔다.
아버지, 여기 저기 거적을 들춰, 그 품 뒤적거려 골라 딴
싱싱한 밀감, 밀감 한 자루씩 끙, 실어주곤 했다.
원항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등대 꼭대기까지 날 번쩍 안아 올리곤 했다.
뭐라! 뭐라! 거친 수염을 내 이마에, 양 볼에 마구 문질렀다.
비리고 짠 해초냄새가 내 작은 몸에 물씬 차올라, 나는 참 얼마나 멀리 반짝였는지…
나는 그 먼 바다의 털, 만파도 무성한 파도소리에 흠뻑 파묻히며 문득 문득 자랐다.
나는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열아홉 살이 되었고, 연애 끝에, 스물두 살에 시집갔다.
원항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꼭 당신의 발목, 그 뭉툭한 발을 내밀어 내게 천천히 내려놓곤 했다.
만파도, 무성한 파도소리를 밟고 온 고단한 말단.
더덕더덕 따개비 붙은 발, 녹슨 발, 부르튼 발, 티눈 박인 발, 내가 자세히 풀어주었다.
내항의 밤은 이윽고 코를 곯았다.
나는 그렇게, 세숫대야 따끈한 물에 아버지를 받아, 바다 바닥에 심곤 했다. 아버지 죽고,
덜컥! 내게 사무친 아버지.
나는 지금도 비옥한 슬픔이다. 젖은 날짜,
그 흙에 든 아버지. 울퉁불퉁 잘 자란 발, 아버지는 어느덧 뿌리 굵은 나무가 되었다.
바람 타는 무성한 밀감나무, 또 복받치게 뻐근하게 날 물고 있다.
(그림 : 정황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