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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 의뭉스러운 이야기 2시(詩)/이재무 2016. 7. 30. 12:28
보령댁은 일 년 한두 번 서울에 있는 딸네 집에 갈 때마다
버릇처럼 큰 보따리를 이고 간다.
보따리 속에는 고향 산천에서 난 온갖 나물이 들어 있다.
산도라지며 더덕, 고사리, 곰취, 냉이, 달래, 머위, 산미나리, 씀바귀, 엉겅퀴,
느릅치, 두릅, 삿갓나물 등속 그때그때 철 따라 나는 산지 나물을 뜯어 싸가지고 가는 것이다.
딸 내외는 그때마다 몇 푼이나 한다고 그 고생이냐고 질색이지만 어찌 이것을 값으로만 매길 수 있겠는가.
불쑥 고까운 마음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령댁은 아직 한 번도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걸 딸네 집에 가기 전에 지하철 지하도에 좌판으로 깔아 놓고 팔기로 하였다.
외손주 외손녀 주전부리값이나 할 요량이었다.
오후 내내 쭈그려 앉아 있자니 무릎 팔다리가 쑤셔 오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래도 애쓴 보람이 있어 저녁 퇴근 시간 즈음해서는 거의 절반가량이 팔려 나갔다.
이제 좌판을 거둬들여야 하나 기왕 벌인 판인데 더 기다려 마저 팔아야 하나 하고 속으로 셈하고 있을 때
말쑥하게 차려 입은 한 청년이 다가와 흥정을 붙여 왔다.
“저기, 할머니 여기 있는 나물 전부 사 드릴게요. 값이 얼마에요?”
아니 요즘 세상에도 이런 건강한 싸가지가 다 있나? 보령댁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올려다보니 깎아놓은 배처럼 잘생긴 청년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총각이 알아서 주셔유.” “아니 그러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할머니 보기에 안돼 보여서 사 드리는 거예요. 어려워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총각이 알아서 달랑게요. 냄새스럽게 워치게 값을 말한댜 떨이를 가지고.”
“알았어요. 할머니 오천 원이면 되겠어요? 오천 원 드릴게 여기 있는 거 전부 싸 주세요.”
보령댁은 순간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니, 이런 괘씸한 싸가지를 봤나.
이게 오천 원밖에 안 돼 보인단 말여, 아무리 떨이라도 그렇지.
늙은 삭신으로 저걸 캐오고 다듬느라 사흘이나 걸렸구먼. 사흘 품삯이 겨우 오천 원 이란 말여.
생긴 것은 기생오래비같이 멀쩡해가지고 말은 똥구녕같이 냄새나게 헌다냐.
보령댁은 자신도 모르게 벌컥 소리를 내질렀다.“냅둬유, 개나 주게.
”서울 청년은 멀뚱멀뚱 보령댁을 쳐다보며 어안이 벙벙하고 있었다.
(그림 : 김명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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