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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 닥터 지바고시(詩)/이재무 2016. 7. 2. 18:54
군중 속에서낯선 듯
낯익은 한 여자를 보았다
지붕에서 흘러내린 그늘
마당 가득 검푸르게 출렁거리던
그해 여름의 하오
먼지 뽀얗게 내려 쌓인 평상에 앉아
손가락 낙서로 내게 은근한 마음 전하며
수줍게 웃던, 살짝 덧니가 엿보이던
웃지 않아도 볼우물 패던 여자
호수처럼 깊은 눈 속에 젖은 돌로 가라앉아
가슴 먹먹하던 그날의 여자를 떠나
처방 듣지 않는 봄을 시름시름 앓고 나니
소년은 훌쩍 자라 어른이 되어 있었다
다 저녁 여름비 내리고
아욱국 내음 번지는 인환의 거리
등 가려울 듯 등 가려울 듯
그러나 끝내 돌아보지 않고
한손엔 손때 얼룩덜룩한 가방
또 한 손으로는 꽃 진 자리
얼굴 내민 햇복숭아 같이 앙증맞은 아이 손잡고
총, 총 , 총 시나브로 멀어져 가는 어제의 사랑
까치발로 서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내 추억의 뜰
선혈처럼 채송화 꽃잎 뚝 뚝 뚝 지고 있었다
(그림 : 정종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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