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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멍게 먹는 법시(詩)/이동순 2016. 7. 18. 14:38
나는 갯것이 좋다
갯것들 중에서도 멍게가 좋다
왜냐하면 멍게는
깊은 바닷속 바위틈에서
긴긴날 혼자 생각에 잠겼던
기막힌 고독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통한 알맹이
그 속살을 반으로 갈라
통째 입에 넣고 씹지 말 것
그저 차분히 멍게를 머금은 채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지그시 눈만 감을 것
그때 은은히 감도는 멍게향기는
필시 고독의 내음일지니
이윽고 입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태
소주와 멍게는 서로 부둥켜안고
블루스를 춘다
스텝을 맞추며 빙빙 돌아가는
나의 입안은 바로 녀석들의 무도장
그들의 블루스가 끝날 때쯤
언제든지 멍게를 삼켜도 좋다(그림 : 최윤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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