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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 명함에 쓴 편지시(詩)/김경미 2016. 7. 17. 19:16
눈 아주 많이 내리던 날이었지요
여의도 한 빌딩 지하에서 마주쳤지요
십 몇년만인가 아득한데 아직도 혼자라며 웃었지요
걱정 스치는 이쪽 눈빛에 괜찮아요, 괜찮아요
참 번듯한 명함을 내밀었지요
귀찮고 성가신 사소함들에마다 찾으라 했지요
여름 햇빛속 걷다 가방이 귀찮을때, 손톱 밑에 가시박혔을때,
비싼 음식이 맛없을때, 돈 꾸고갚기 싫을때, 그리고 또,
소녀인 양 웃는데 문득 흰 나비떼들 창을 넘어들고
따라들어온 바람은 서늘했지요
신사의 악수는 청량했지요
돌아와 베란다 저 밑, 공사 끝나가는 성당을 봤지요
봄 되면 가서 많이 뉘우치리라 했던 곳이지요
붉은 벽돌 위에 쌓은 흰 눈이 꼭남자의 울어 붉던 눈 같지만
폐인 된다더니 안 된 그대
그 명함 눈 속으로 날려보냈지요
마당에 선 성모마리아, 두 손 벌려 그 흰 종이
다 받아드는 것 똑똑히 보았지요
(그림 : 임진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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