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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또 어디쯤서 나를 저버리나 보다
마음 속 햇빛 많은 나뭇잎들 폭설처럼 떨어져 내리더니
수박향내 애틋하던 저녁 산책길이 돌변했다
이번엔 남의 집 대문앞이 아니다
누드화 같은 이 바다로 바다로 누가 또 날 버리나 보다
잡을 것 오직 은박지 같은 물뿐이다
소리치는 것도 부끄럽다
망망대해 혼자뿐인데 누군가 나타나도 원수가 될 것이다
기다림 간절했으므로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렇게는 아니었다 이렇게는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하라고
현생의 나를 만난 내 생에 사과라도 남기고 싶었으나
물천장 위 비바람에 섞여 내리는 주황빛 저녁이 성당의 색유리 가득한 성가 같아
붉은 점박이 나리꽃처럼 걸핏하면 끼얹어지는 이 침수 이 상실감을, 하긴 나는 사랑하던가
떠나고 없는 고요할 물 속 묵묵함을 내심 더 바랬던가 늘 그런 식이었던가
(그림 : 허필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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