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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가자시네요 이제 스물아홉의 당신
아직 무엇이든 약속할 수 있고 깨도 좋은 나이
잠시 나도 오래전 그 나이인 줄 알아 웃었나봐요
뻔뻔키보단 서글프죠 늦은 미혹(迷惑)
흰 벚꽃들 얼른 지고 차라리 당신 발이라도 다쳤으면
거기 꽃그늘 아래 어린 여자들 보면 부끄럽기나 할 테니
스물아홉 살의 당신 쪽이 약속 하나쯤 깨도
무량사는 여전히 거기 있을 테고 난 차라리 혼자 가지요
미혹의 거품 가만히 맥주잔처럼 기울여
거기 마당 한켠에 따라버리고
못 지켰던 내 스물 몇 살의 약속들 곁에 따라버리고
지키지 못한 약속들끼리 몇 생을 거듭하여 갚으라다가
어느 생엔가는
나, 열아홉쯤으로 무량사 가자고 늙은 당신께 가자구요
지키지 못한 약속들 때문에 봄은 계속될 거구요
무량사(無量寺)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에 있는 절.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옛 문헌에는 홍산 무량사라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무량사가 위치한 지역이 행정구역으로 부여군 외산면에 해당되어 외산 무량사라 불리고 있다. 절에 대한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에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다가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초기에 개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병화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린 뒤 조선 인조 때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전(보물 제356호)·5층석탑(보물 제185호)·석등(보물 제233호)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당간지주와 김시습의 부도가 남아 있다.
(그림 : 박미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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