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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지고 입맛이 없다는
아내를 위하여 찬밥 한 그릇을 말아
멸치 몇 마리와 함께 들여온 나는
온갖 너스레를 다 떤다
내 유년의 고향 얘기며
풋고추며 양파며 된장이며
이 여름 쉬 말은 찬밥 한 덩이가 얼마나 맛나는 별미인지를그러나 아내여
눈웃음치며 게 눈 감추듯
찬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며 생각해 보면
찬밥이 어찌 밥이 차다는 뜻뿐이랴
내가 세상에 나와 오로지 굽실거리며
아양 떨며 내 받아온 눈치며 수모
그 모두 찬밥인 것을아내는 아직도 입맛을 다시며
재미있다고 깔깔거리고 박수를 치고
제가 배웠던 고등학교 교과서 그 낭만적인
김소운과 <가난한 날의 행복> 한 귀절을 떠올리며
정말, 우리는 늙어서 할 얘기가 많겠다고
스스로 결론까지 짓는 아내 앞에서 더욱
너스레를 떨며 아양을 떠는 나는 누구냐.가랑비 촉촉히 속으로 젖어드는
찬밥 한 그릇.(그림 : 이장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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