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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벌목(伐木)시(詩)/성선경 2016. 6. 27. 17:24
우리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으면 더 이상
늙지 않는다고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잘 자란 푸른 수목을 향하여
톱날을 세우고 시퍼런 도끼날을 겨누었다
우리도 늙어지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어느 한 구석에서 촘촘히 나이테를 키우다
어느 날 문득 시퍼런 도끼날이 가슴에 와 닿을까
김씨 손씨도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만
스스로 쑥스러워하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참때가 이슥하도록 꽝꽝 서로의 예감만 찍었다
그래, 그만하면 자랄 만큼 자랐지
그쯤 했으면 세상도 볼 만큼 보았겟지
때때로 문득문득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우리들이 지나온 발자국 같은 그루터기만 남겨 놓으며
꽝꽝 침엽수(針葉樹)의 단단한 근육질을 향해 도끼만 휘둘렀다
자랄 만큼 자라면 이젠 자라지도 않을 거야
품도 웬만하면 더 이상 늘지 않는 법이거든
이제는 새로운 묘목에서 자리를 내어 줄 때도 되었지
가끔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정말 아무런 생각 없는 듯 무심한 얼굴로
꽝꽝 잘 자란 수목(樹木)들을 향하여 도끼날만 휘둘렀다.(그림 : 이태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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