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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어가면서,
기어가서,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빨간 속살로
기어간 거리만큼
땅을 이탈한 죄만큼
흔적은 딱딱한 사랑이 되었다
그의 발바닥은 부르트고 죄가 많아 두텁다
썩을 만큼 지치도록 썩어
건널 수 있는 것들은 다 건넜다
이름과 귀와 눈동자를 지나고
비밀을 발설하던 입술과 혀를 지나
지저분한 하루를 건넜다
건넌다란 단어를 건넜다
생의 뒤편은 절벽보다 더 캄캄하다
사람들은 사랑을 너무 쉽게 말한다
사랑이란
몸이 먼저 다가가는 일
뜨거운 길바닥을 기어보면 안다
사랑은 낮아서
뜨겁고 더러운 것이다
(그림 : 강경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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