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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 광양 여자 2시(詩)/이대흠 2016. 5. 14. 17:26
쓸쓸함이 노을 든 억새꽃 같은 여자와
살고 싶었네 쭈그러지기 시작한 피부에
물고기 눈처럼 순한 눈망울을 끔벅거리던 여자
산죽처럼 서걱거리는 연애로 청춘을 다 탕진하고
세상 밖으로 가는 길을 손목에 새기려 했던 여자
나는 맹감잎 같은 귀로 그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어쩌지 못한 가시가 그녀를 다치게 하였네
사랑한다 말하면 밥 뜸들일 때의 숯불처럼
자분자분 끓어오르는 여자
그 여자를 생각하면
분홍이나 노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외풍 심한 겨울밤에도 마음 한쪽에 아랫목이 생겼네
연두 뚝뚝 떨어질 듯 연한 감잎처럼 순한 귀를 가진 여자
그 여자와 어느 산 아래 흙집 지어 살림 차리고
찰방거리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주고 소꼴을 베러
새벽이슬 깨뜨리며 바지게 지고 들로 나가리
익은 낫질에 후딱 오른 한 바지게 풀짐에선
아직은 좀 비릿한 그녀의 살냄새 나리
그런 날이면 밥상도 제쳐두고 그녀의 몸내 맡으리
그녀가 등목을 해주는 여름이 오면
별 낮은 밤하늘 반딧불이처럼
깜박깜박 서로의 반짝임을 바라보리
몸물이 올라 가을이면 노란 산국이 되는 여자
그 여자 어깨를 주물러주며 함께 늙어가고 싶었네
아이 둘 낳기에는 너무 늦은 여자
여전히 순정은 치자꽃 같아서 스치기만 하여도
달큼한 향내를 풍기는 여자 그 여자 낯빛에 스민 그늘
그 그늘 아래서는 슬픔도 마냥 슬픈 것만이 아니고
기쁨도 그저 환한 것만이 아니라서
따뜻한 슬픔에 마음은 그저 노곤해지고
행여 다툰 날이면 그 여자 눈동자 눈부처 향해 절을 하리
그녀는 이내 순하게 무릎을 꿇겠지 그러다보면
버석거리는 마음에도 단풍 들리라
서로의 아픈 데를 어루만져주며
조금씩 잎을 떨구는 감나무들처럼 담담히
나란히 빈 몸으로 겨울을 맞고 싶었네
(그림 : 정인성 화백)
Karmaley Ween - And I Lo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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