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대흠 - 광양 여자 1
    시(詩)/이대흠 2016. 4. 9. 22:29

       

     

    청보리 팰 때는 청보리처럼 푸르게 웃음 짓던 여자

    빈 들 보리밭 가 점심 굶고 걸어도 마냥 나를 배부르게 하였던 여자

    쓸쓸함이 산수유 꽃그늘 같아서 열에 들뜬 내 머리를 가만히 다스려주고

    쉬운 분노와 잦은 뉘우침을 반복하던 나에게 가시몸 속 탱자꽃을 보여주던 여자

     

    내 오래 절망했을 때 치약처럼 상큼한 냄새로 제 몸이 걸레되어 더께 낀 내 속을 찬찬히 닦아주던 여자

    내가 아플 때면 메꽃잎 같은 손으로 상처의 뿌리를 매만져주던 여자

    눈동자가 초꼬지불 같아서 어둠속을 초롱초롱 빛내던 여자

    그 눈동자에 눈부처로 있는 게 즐거워 오래도록 눈 마주 보았던 여자

     

    불경 같은 여자

    연꽃 같은 여자

    숯불 같은 여자

    차심 같은 여자

    짐승 같은 여자

     

    마른 낙엽 밑 돌멩이처럼 감추어진 여자

    잔바람에도 쉬 드러나 찢긴 내 맨살을 아리게 하는 여자

    덖은 찻잎에 숨은 그늘처럼 오래도록 감추어져 있다가 맑은 찻물로 우려지곤 하는 여자

    내 오래 사랑하였고 한번도 미워 한 적 없었던 여자

    너무 깊이 사랑했으므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여자 모두에게 버림받고 아파 울더라도 곁에 두고 싶었던 여자

    몸 영 못 가누게 되어 기저귀 차고 지내게 되면 내 손수 기저귀 갈아주고

    고운 노래 불러주고 싶었던 여자 

     

    내 숨막힌 세월 숨통 터주고 제 아픔 하나도 나누어주지 않았던 나쁜 그 여자,

    생각하면 목련길이 떠올라서 세상의 모든 밤을 봄밤으로 만드는 여자

    꽃에 허기진 나를 밤 깊도록 잠 못 이루게 하고 검게 바랜 목련 꽃잎에 눈물 떨구게 하는 여자

     

    과냥과냥 불러보면

    어느 날 문득 자응자응 대답할 그 여자

    초꼬지불 : 호롱불을 일컫는 전라도 말

    시인은 장흥사람이고 아마 사랑했던 여자가 광양사람인가보다.

    광양사람들은 그쪽 사람들을 과냥과냥이라 부른단다. 장흥사람들은 그쪽 사람들을 자응자응이라 부른단다.

    듣는 어감이 그냥 의성어나 의태어처럼 친근하다.

    아뭏든 시인의, 광양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진짜 사랑같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림 : 이영철 화백)

     

    '시(詩) > 이대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대흠 - 어머니의 봉다리  (0) 2016.05.15
    이대흠 - 광양 여자 2  (0) 2016.05.14
    이대흠 - 외또르  (0) 2015.08.10
    이대흠 - 그러니 어찌할거나 마음이여  (0) 2015.06.19
    이대흠 - 어머니라는 말  (0) 2015.02.26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