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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 어머니의 나라시(詩)/이대흠 2016. 8. 16. 17:11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뜨거운 물을 땅바닥에 버리지 않는다
수챗구멍에도 끓는 물을 붓지 않는다
땅속에 살아있을 굼벵이 지렁이나 각종 미생물들이 행여 델까
고것들 모다 지앙신 자석들이라 지앙신이 이녁 자석들 해꼬지 한다고 노하면 집이 망해분단다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는다
그 나라 부엌의 수챗구멍 밑에는 염라대왕이 젝기장 들고 앉아
누가 먹을 것을 버리는지 살피고 있다 죽어 저승 갔을 때 한 톨 쌀을 한 가마로 쳐서
고걸 드는 벌을 슨단다 귀한 음석 함부로 하먼 쓴다냐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감을 딸 때도 까치밥 두어 개는 반드시 남겨 둔다
배고픈 까치는 물론 까마귀 참새들까지 모두 제 밥이다 날아와 먹는다
가을걷이할 때는 까막까치 참새를 다 쫓지만 그 어느 것이라도 굶어죽는 건
우리 몸의 일부가 떨어지는 것이기에
먹을 것 귀한 겨울에는 산 가까이에 시래기나 생선뼈를 놓아두기도 한다
배고픈 산짐승들 그걸 먹고 겨울 난다
때로 산토끼를 잡기도 하고 들고양이를 쫓기도 하지만
제아무리 고방 생선 훔쳐먹는 도둑괭이라도 새끼 밴 암컷에겐 생선 대가리를 내어준다
행에나 새끼 밴 짐승 죽게 하먼 사람 새끼도 온전치 못하는 벱이다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똥오줌이 오물로 버려지지 않는다
땅에서 온 모든 것 땅에게 돌려준다
그마저 생오줌이나 생똥으로 갚는 게 아니다
사람이란 독한 짐승이라 사람 침에 뱀이 죽고 사람 발에 풀이 죽고 생똥 생오줌에 채소가 녹기에
생오줌은 합수통에서 지글지글 끓여서 독기 다 뺀 후 무 배추 밑 돋우는 거름으로 쓰고
생똥은 짚풀과 섞어 한 육 개월 푹 삭힌다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나무 한 그루 함부로 베어내지 않는다
나무마다 신이 있어서 허락없이 베어내면 살(煞) 맞아 사람 목숨 하나가 끊어지기에
정히 나무 필요할 때면 막걸리 두 되쯤 바친 후
나무신 마음 먼저 풀어주고 톱 댄다
죽어 땅으로 돌아갈 때도 잡초 우거진 빈 땅이라고 함부로 구덩이 만들지 않는다
파낸 자리마다 무덤자리라 뜻 없이 파낸 자리엔 사람 목숨 하나 눕게 된다는
머나먼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그림 : 김길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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