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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 술이나 빚어볼거나시(詩)/이재무 2016. 5. 13. 15:28
올가을엔 만사 제치고
내 고향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나 가서
철없던 유년 소풍 갔다가 보물찾기로 받은
호루라기 종일 불다가 잃은 뒤로
빛과 색 더욱 무성해진 풀밭에 빈 항아리로 누워
산그늘 덮고 한 달포 자다 깨다 하면서
저 잘난 세월에 농이나 걸까
그러다 여우비 내리걸랑 고스란히 아껴두었다
한량 같은 구름 몇 살 오른 별 몇
동동, 동치미처럼 띄워놓고
산달 앞둔 여자 둥근 배 같은 달도 푹 담가 띄우고
떼로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삼태기로 쓸어 담아
꾹꾹 눌러 쟁이고
오명가명 수박씨인 양 툭툭,
내뱉는 누룩 내 나는 사투리도 몇
함께 절여서 도수 높은 술이나 빚어볼거나
명리에 밝은 샌님들 불러들여
인사불성될 때까지 대작할거나
(그림 : 박양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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